이명헌 경영 스쿨
[음악] 프로그래시브 락을 들어보시겠다면
경이로운 프로그의 세계로
이명헌 [ 1999-11-8 ]

Prog10 년 전에 듣던 음반을 아직도 듣고 계십니까? 아니면 두어 달 전에 즐겨 듣던 음악이 뭔지도 잘 생각이 안 나시나요. 유행따라 순간적으로 소비한 다음 내버리는 인스턴트 식품 같은 음악이 아닌, 외롭고 힘들 때, 또 좋은 일이 있거나 사랑에 빠졌을 때, 그렇게 평생을 함께 할 수 있는 음악을 가질 수 있다면 더 좋은 것이 아니겠는가 생각합니다. 친구처럼 오랫동안 듣게 되는 대표적 쟝르에는 프로그래시브 락과 재즈가 있다고들 합니다. 둘은 음악적 완성도도 높고, 최고 수준의 실력을 갖춘 뮤지션들이 가장 많이 포진해 있고, 다른 쟝르와 쉽게 혼합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매니액들의 평생의 동반자가 되는 것 같습니다. 프로그래시브 락은 줄여서 "프록락(Prog Rock)"이라고도 합니다.

몇 년 전에 우리나라에서도 프로그래시브 락 붐이 일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국내 프로그래시브 락의 대부(?) 격인 성시완(시완레코드 대표)씨가 2시간 짜리 심야 에프엠 프로그램, "디스크쑈"의 디제이로 발탁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난 데 이어, 시완 레코드라는 프로그래시브 락 전문 레코드사가 나타나면서 너도 나도 장식품처럼 '프로그래시브'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 당시 성시완씨나 전영혁씨가 줄기차게 소개했던 이태리 프로그래시브 락 밴드들은 상당한 인기를 얻기도 했고, 그 이상 열기를 바탕으로 수십 년 전 폐반되었던 음반이 새롭게 씨디로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성시완씨와 전영혁씨에 의해 소개된 프록락 음악들은 이미 잘 알려진 영국 프록락보다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쪽 음악이었습니다. 그 결과 프록락이라고 하면 남들 잘 모르는 이상한 밴드를 많이 알고 있으면 좋은 것처럼 생각하는 이상한 분위기가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태리 프록락 밴드들은 어떤 형태로든 영국 프록락의 재판이거나 영국 밴드의 강한 영향하에 나타난 팀들이 대부분입니다. 한 때 이태리에 일었던 프록락 붐을 타고 등장했던 난해하기만 하고 아무런 감흥도 주지 않는 시답쟎은 밴드들도 단지 희귀 앨범의 주인공이라는 이유만으로 괜히 수집의 대상이 되는 기형적 현상도 나타나게 됩니다. 정작 꼭 들어봐야 할 명 그룹들 음악은 제쳐둔 채 말이죠.

이 글은 프록락의 세계에 발을 들여 놓을 분들이 그런 함정에 빠지지 않고 좋은 밴드들을 먼저 접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썼습니다. 주변에서 이상한 밴드 이름을 들이대며 '희귀' 어쩌고 하는 얘기를 들으시면 그냥 무시하세요. 음악성 없는 희귀앨범은 손에 넣고 난 뒤엔 먼지만 뒤집어 쓰고 있게 됩니다. 수집 자체가 목표인 사람들의 얘기는 그다지 귀 기울일 필요가 없습니다.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요?

프로그래시브 락(Progressive Rock)의 정의

국내에 프록락이 본격적으로 소개된 것은 이제는 전설이 되어버린 MBC 라디오의 심야 음악 방송, "음악이 흐르는 밤에"를 진행했던 성시완씨 덕분이었습니다. 성시완씨는 음반 수집가, 팝 컬럼니스트로 (또 이제는 사업가로) 당시 디스크자키 경연대회에서 대상을 차지하면서 많은 사람 앞에 등장했습니다. 그는 "음악이 흐르는 밤에"를 통해서 그 때까지 국내에 한 번도 소개된 적이 없는 이태리 프록락, 영국 프록락, 프랑스 프록락들을 소개하면서 일반적인 팝이나 락에 익숙해져 있던 음악팬들에게 환상적인 새로운 세계를 열어줍니다. 라디오 프로그램과 함께 오프라인으로 발간되었던 팜플렛 "Underground Papyrus"는 이름마저 생소하던 프록락에 관한 최초의 본격 소개서 역할을 하면서 높은 인기를 모으기도 했습니다. 언더그라운드 파피루스는 책자를 받기 위해서 줄을 서서 기다리기도 하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하면서 상당 기간 발간되다가 성시완씨가 "밤의 디스크쑈"를 다시 맡으면서 내놓았던 "zero"호를 마지막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아마 지금도 국내 프록락 팬들 집에는 언더그라운드 파피루스가 몇 권씩 놓여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성시완씨가 프록락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얘기할 때 자주 등장하던 말이, "새벽 아침의 안개 같은 음악.."이었습니다. 프록락은 신비롭고 안개에 쌓인듯한 느낌을 주는, 여러 쟝르에 걸쳐서 문자 그대로 진보적인 색채를 드러내 주었던 음악을 총칭한 것이라는 의미였습니다. 실제 그렇습니다. 프록락은 특정의 쟝르로 일컫기에는 상당히 다양한 형태의 음악을 총칭한 것이고, 하나의 자세적인 면을 부각한 용어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블루스, 락, 또는 재즈나 포크락 등, 각 쟝르에서 연주상으로, 작곡, 편곡적으로, 메씨지, 음반 자켓, 무대 위의 퍼포먼스 등에서 진보적인 면모를 보여줬던 음악을 지칭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 어느 쟝르에도 넣기 곤란한, 오로지 '프록락'이라는 틀에서만 어울리는 밴드 역시 상당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밴드들이 프록락의 성격을 어쩌면 가장 잘 드러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간략하게 '족보'식으로 정리해 보면 대략 이런 특징이 있습니다.

  • 클래식의 과감한 도입: 악기 편성적인 면(바이얼린, 플룻, 심지어 오케스트라까지)에서나 곡 구성적인 면에서 클래식적 요소가 많습니다.
  • 연주를 맥시멈으로: 통상적인 쟝르는 노래를 받쳐주기 위한 반주적인 측면에서 연주인 자신의 기량을 조금은 자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프록락은 재즈처럼 플레이에 어떠한 한계도 두지 않습니다. 화려한 연주를 들어볼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 실험성: 역시 프록락의 가장 큰 특징은 전례 없는 실험성입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변화무쌍한 편곡이나 여러 가지 음향효과의 거침없는 사용과 같이, 다른 쟝르의 음악과는 '뭔가' 다른 음악입니다.
  • 컨셉 앨범: 하드락 밴드처럼 프록락 밴드도 앨범 전체로 승부합니다. 일부 유명한 밴드를 제외하고는 싱글 발매는 잘 하지 않으며 앨범 전체를 하나의 주제를 표현하는 일종의 '작품'으로 생각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앨범 자켓도 미술작품처럼 생각하며 음악과의 조화를 도모하기도 합니다.
  • 메씨지: 프록락의 가사는 그 주제의 한계를 모릅니다. '시간', '호흡', '신화', '역사', '종교', 등 기존의 음악에선 전혀 다루지 않던 주제들을 자유롭게 다룹니다.

그러면 프록락의 대표적 밴드들을 살펴보면서 각 밴드 별로 꼭 들어보아야 할 곡과 앨범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대표적인 프록락 밴드들


1. Genesis

Genesis얼마 전 수 십억원짜리 초호화판 결혼식으로 화제를 모았던 드러머 필 콜린스, 그리고 뮤지션이라기 보다는 철학자나 사회운동가적 분위기가 더 짙게 풍기는 보컬리스트 피터 게이브리얼, 기타리스트 스티브 햇킷 등이 조직한 영국 프로그래시브 락 밴드 제네시스. 그룹의 '정신'이랄 수 있는 피터 게이브리얼이 탈퇴한 뒤로는 거의 팝 밴드 수준으로 전락해 버리긴 했지만, 제네시스의 초창기 앨범들은 프로그래시브 락이란 무엇인가를 가장 잘 보여줍니다. 제네시스는 특히 이태리 프로그래시브 밴드들에 강한 영향을 줍니다. 이태리 프로그래시브 락 밴드들은 어떤 형태로든 제네시스를 비롯한 영국 프록락 밴드의 영향을 받지 않은것은 거의 없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제네시스라는 이름이 생소하실 분도 아마 필 콜린스(Phil Collins)는 들어보았을 것입니다. 필 콜린스가 제네시스의 드러머(중후기엔 보컬까지)였습니다.

제네시스는 비틀즈와 독특하게 대비되는 밴드입니다. 비틀즈가 리버풀이라는 항구도시의 노동자 계급 청년들이 모여서 이뤄진 밴드였다면 제네시스는 영국 상류층들이 가는 학교, Charterhouse school에서 만난 동창끼리 만들었던 밴드였습니다. 제네시스와 비틀즈의 초창기 앨범은 출신배경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합니다. 비틀즈가 "Love me do", "I wanna hold your hand" 등의 직설적이고 단순한 Rock&Roll로 출발했던 것과 달리 제네시스는 데뷔앨범 타이틀이 "From genesis to revelation"(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이었습니다. 역설적으로 비틀즈는 중후반기를 거치면서 예술 작품 수준의 명작을 만들어 냈는 데 반해 제네시스는 더욱 대중적이 되어 갔습니다..

제네시스는 모든 멤버가 출중한 연주력을 갖고 있었지만, 상대적으로 보컬리스트 피터 게이브리얼과 드러머 필 콜린스가 음악적 주도권을 갖고 있었습니다. 필 콜린스는 보컬리스트를 맡고 싶어 했지만 뛰어난 보컬리스트 피터 게이브리얼의 영향 때문에 드럼 연주 중 간혹 코러스만 하는 수준에서 욕심을 누르고 있었습니다.

필 콜린스는 타고난 탤런트였습니다. 제네시스에 들어오기 전 이미 드럼 연주와 노래, 심지어 연기 활동까지 하면서 다양한 부문에서 재능을 발휘했었습니다. 제네시스 중반기, 피터 게이브리얼이 탈퇴한 뒤 필 콜린스는 결국 보컬리스트가 되겠다는 소망을 이룹니다.

제네시스 음악은 일단 참 아름답습니다. 선율이 곱습니다. 연주력 역시 일품입니다. 가사도 영국의 전설을 비롯해서 현실 참여적인 신랄한 가사, 때론 희곡을 연상시키는 가사까지 재미있게 읽고 들어볼 수 있습니다. 음악이 무척 변화무쌍하게 전개된다는 점만 제외하면 잔잔하고 '좋은' 노래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습니다.

또한 제네시스의 보컬 멜로디는 강한 흡인력을 갖고 있습니다. 몇 번만 들어도 계속 멜로디가 맴돕니다. 그래서 곡 구성과 연주가 현란한데도 곡이 강한 인상을 주며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제네시스 음악은 일반적으로 얘기하는 프로그레시브 락의 교과서와 같은 음악입니다. 킹 크림즌(King Crimson)이 실험정신 측면에서 프록락의 특징을 상징한다면 제네시스는 화려하고 난해한 연주와 극적인 전개, 곡의 메세지, 컨셉 앨범 등의 일반적인 프록락의 특징을 실제 곡을 통해 어떤 방식으로 구현하는지를 천재적으로 제시했다 할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프록락의 방법론을 구체화시킨 밴드입니다. 그래서 많은 이태리 프록락 밴드들이 제네시스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거칠게 얘기하자면 이태리 프록락 밴드의 대부분이 제네시스적 전개 방식의 영향하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름대로 창세기적 밴드입니다.

제네시스는 거의 30여 년에 달하는 그룹 역사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많은 앨범을 내놓았습니다. 피터 게이브리얼의 솔로 전향 후 내놓은 음반들과 멤버들이 다른 뮤지션들의 음반에 참여했던 것들, 또 필 콜린스의 솔로 앨범들, 기타리스트 스티브 해킷의 솔로 앨범들, 베이시스트 마이크 러더포드가 조직했던 "Mike and the mechanics" 앨범들 (80 년대 높은 인기를 끌었습니다)까지 하면 정말 많은 앨범이 나와 있습니다.

우선 제네시스 초기 3 대 걸작으로 일컬어지는,

  • Nursery cryme
  • Foxtrot
  • Selling england by the pound

를 들어 보세요. 이 세 장은 제네시스 특유의 지적인 분위기와 포근한 느낌,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드라마틱한 전개 방식, 영국 포크의 자취를 느껴볼 수 있습니다. 반복해서 들을수록 멜로디의 아름다움이 깊게 느껴지는 곡들이 많습니다.

p2p 프로그램으로 찾아들어 보실 만한 곡 네 개를 골라 보면:

  • Supper's ready [Foxtrot 앨범]
  • The musical box [Nursery Cryme 앨범]
  • Firth of fifth [Selling England by the pound 앨범]
  • Watcher of the sky [Foxtrot 앨범]

"Supper's ready"는 20 여분이 넘는 대곡으로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제네시스의 대표곡입니다. 피터 게이브리얼은 멜로디를 만드는 천부적 재능을 타고났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곡입니다. 극적이면서도 서정적인 보컬 멜로디가 특유의 지적인 느낌과 최상의 조화를 이룹니다.

제네시스는 다른 프록락 밴드도 그렇지만 앨범 전체를 감상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위에서 소개한 세 장을 들어 본 다음 더 들어보고 싶다면 피터 게이브리얼의 솔로 앨범을 들어 보면 좋을 듯합니다. 필 콜린스가 전면에 나선 뒤의 제네시스 음반들은 상대적으로 평이한 락음악으로 채워집니다. 80 년대 이후부터는 지나치게 팝적으로 변모합니다. 상업적으로는 더욱 성공하게 되지만 오래된 팬들로부터는 외면을 받습니다. 80 년대 이후에 나온 것은 조심해서 구입하시기 바랍니다. "Invisible touch" 같은 음반이 80년대 제네시스 음악을 대표하는 음반입니다. 거의 필콜린스의 솔로 작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 '팝'음악입니다.

Peter Gabriel제네시스 열혈 팬들 중에는 콜린스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꽤 있습니다. 필 콜린스 때문에 제네시스가 '전락했다'고 생각해서입니다. 그런 면이 없지는 않습니다만 (필 콜린스는 근자의 모습에서 보신대로 매우 대중 지향적입니다), 사실은 제네시스의 세포핵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는 피터 게이브리얼의 탈퇴 자체가 제네시스 색채를 잃어버리는 데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할 수 있습니다. 근자의 필 콜린스는 영화 "타잔"의 주제가인 "You'll be in my heart"같은 팝을 부르고 있는 팝스타처럼 여겨지고 있지만 굉장히 뛰어난 드러머입니다. "Nursery Cryme" 앨범을 비롯한 초기 앨범들을 잘 들어보면 필 콜린스의 드럼이 프록락 쪽에서나 또는 락 전체로 봐서도 최고 수준의 연주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연주력도 굉장한 데다가 특히 리듬 만들기에 탁월합니다. 이것은 최근의 솔로 앨범에서도 잘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드럼 머쉰을 사용하든 직접 연주를 하든, 간결하면서 곡에 가장 어울리는 리듬 패턴을 만들어 내는 데 뛰어납니다. (신디로퍼의 "True colors"를 필 콜린스가 리메이크했던 곡을 한번 들어보세요. 얼마나 멋진 패턴의 리듬인지.)

피터 게이브리얼 역시 솔로 전향 뒤 꾸준한 인기를 누립니다. 핑크 플로이드의 로져 워터스와 함께 대학생과 지식인들이 특히 좋아하던 뮤지션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Sledgehammer"라는 곡으로 빌보드 싱글 탑 텐 안에 들기도 했고, Kate Bush와 함께 "Don't give up"을 불러주며, 특유의 오묘한 지성적 목소리를 들려주기도 했습니다. "Don't give up"은 꼭 들어보세요. 읍조리 듯 세상 살이의 힘겨움을 노래하는 목소리에 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Biko"같은 곡은 남아프리카 인종차별 정책(아팔트헤이트)에 저항하다가 경찰에 의해 암살된 인권운동가 "Steve Biko"를 노래한 참여적 노래입니다.

제네시스는 연주 측면에서 프록락의 구성 방식을 창안해 낸 것뿐아니라 스테이지 역시 파이어니어답게 독창적인 형식을 선보였습니다. 피터 게이브리얼은 진한 분장을 하고 화려한 의상을 걸친 채 흡사 연기자가 연기를 하듯 무대를 누볐습니다. 이렇게 화려한 분장과 눈길을 사로잡는 시각적인 무대는 글램락(Glam Rock)이라는 새로운 쟝르가 나타나는 데 큰 영향을 미치기도 했습니다.






2. Yes

YES연주를 얘기할 때 절대 빠뜨릴 수 없는 밴드, 바로 예쓰입니다. 프록락 밴드들의 연주 실력이야 정평이 난 것이지만 그 중 예쓰는 단연 최고입니다. 기타면 기타, 보컬이면 보컬, 드럼이면 드럼, 베이스면 베이스, 또 프록락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건반 역시 최고 수준의 뮤지션이 모였던 곳, 바로 예쓰입니다.

예쓰 역시 수 많은 멤버 교체를 거치며 거의 30년 가까이 유지되어 왔기 때문에, 도대체 어느 음반부터 들어보아야 할 지 막막해지는데요. 특히 국내에도 많은 팬들이 있는 덕분에 상당수 예쓰 앨범들이 라이센스, 수입의 형태로 들어와 있어서 예쓰 음악을 들어보려는 분들은 레코드 가게에서 갈등하게 됩니다.

예쓰는, La Chasse라는 영국 클럽에서 노래를 하던 죤 앤더슨과 그 클럽에서 같이 활동하던 베이시스트 크리스 스콰이어가 만나면서 시작됩니다. 예쓰의 보컬리스트 죤 앤더슨은 프록락계의 대표 보컬리스트 중 한 명입니다. 반겔리스(Vangelis)와 함께 음반을 내기도 했던 "천상의 목소리"입니다. 기타리스트 스티브 하우는 제네시스의 스티브 햇킷과 함께 프록락 계의 "양대 스티브"로 일컬어지는 기타의 달인입니다. 예쓰 음악을 카피하기 힘들게 만드는데 기여한 인물이죠. 드러머 빌 브루포드. 변박의 제왕. 손 2개 발 2개로 친 것으로 생각하기 힘든 현란한 테크닉을 보여준 사람입니다. 복잡한 리듬과 정교한 터치로 EL&P의 칼 파머와 함께 프록락 드럼의 전형을 제시했던 인물입니다.

Jon Anderson

크리스 스콰이어. 90년대 예쓰 재결성(Anderson Bruford Wakeman Howe ; ABWH) 당시 베이시스트 크리스 스콰이어가 따돌림을 당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인간적인 문제 때문이었지 결코 연주적인 면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받쳐 주는' 베이스에서 탈피, 존재감 있는 베이스를 보여줬습니다. 강한 이펙터를 건 거친 톤과 4 현 모두를 고루 활용한 그의 연주는 매우 현란하면서도 동시에 곡의 근간을 지켜주는 독특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릭 웨이크먼. 솔로 앨범도 여러 장 나와 있는, 영국 왕립 음악 학교에서 음악 교육을 받았던 건반 주자입니다. 프록락이 '키보디스트의 음악'이 되는 데에 키쓰 에머슨과 함께 크게 기여한 인물입니다. 산더미 같은 신디싸이져 더미 속에서 클래식을 방불케 하는 화려한 건반 연주를 들려주었습니다.

이들 멤버 한 명 한 명은 다들 솔로 앨범을 여러 장 내놓기도 했던, 문자 그대로 '수퍼그룹'이 예쓰입니다.
위 멤버 외에도 릭 웨이크먼의 후임으로 들어왔던 패트릭 모라즈라든지, 제프리 다운스, 앨런 화이트 등, 여러 명의 명인들이 거쳐간 곳이 또한 예쓰이며, 밑에서 소개드릴 "EL&P"의 라이벌로,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둔 영국 프록락의 대표 밴드입니다.

일반적으로 프록락이 키보디스트, 건반주자의 음악인데 반해 예쓰는 상당 부분 기타 싸운드를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핑크 플로이드 역시 기타를 기반으로 곡을 전개해 나갑니다만, 핑크 플로이드가 데이빗 길모어의 블루지한 기타를 바탕으로 진보적 색채의 곡들을 만들어 내었다면, 예쓰는 스티브 하우라는 걸출한 기타리스트의 재즈적이고 포크적인 감성과 연주를 기반으로 한 드라마틱한 곡을 들려 주었습니다.

예쓰의 곡을 들어보시면,

  • 스티브 하우의 아름다운 어쿠스틱 기타 선율 위로 청명하게 울리는 존 앤더슨의 맑은 음색이 어우러진 부분과 (포크적 부분)
  • 스티브 하우의 텐젼 걸린 코드와 코드를 허물어뜨리듯 분방하게 움직이는 솔로 연주 + 빌 브루포드의 복잡한 리듬 + 크리스 스콰이어의 거친 16비트 베이스 라인 + 오르갠 싸운드를 기반으로 클래시컬한 건반 연주가 감싸는 부분 (재즈/락적인 부분)

이 둘이 적절하게 혼용되어 있습니다.

이런 분방하고 현란한 연주가 존 앤더슨의 귀에 잘 들어 오는 선율 만들기를 통해 마무리되면서, 예쓰의 곡은 독특하면서도 쉽게 친숙해질 수 있는, 팝 팬들이나 프록락 매니액 모두를 만족시키는 음악이 됩니다. 예쓰는 상업적으로도 상당한 성공을 거둡니다. "Don't kill the whale"이나 "Wonderous stories", 또는 "Owner of a lonely heart" 같은 싱글 컷들이 빌보드 싱글 챠트 상위권, 심지어 No.1까지 오릅니다.

예쓰는 다음의 5곡을 p2p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찾아들어 보세요.

  • And you and I [Close to the edge 앨범]
  • Yours is no disgrace [The Yes Album 앨범]
  • Long distance roundaround [Fragile 앨범]
  • Owner of a lonely heart [90125 앨범]
  • Roundabout [Fragile 앨범]
  • I've seen all good people [The Yes Album 앨범]

앨범으로는,

  • The Yes Album
    예쓰의 71년 앨범입니다. 위에서 추천한 곡, "Yours is no disgrace"나 "I've seen all good people" 등의 명곡이 담긴 음반이며 조금은 정리되지 못한 싸운드를 보여줬던 전작 "Time and a word"와 달리 예쓰만의 개성이 완성된 음반입니다. 71년 나온 음반이 이렇게 훌륭한 싸운드로 레코딩되었다는 것이 신비롭습니다. '프로그래시브'라는 단어의 의미대로, 시대를 앞서간 싸운드와 연주, 작곡을 보여줬기 때문에 30년이 지나서도 촌스럽기는 커녕 최근 음반보다 더 세련되게 들립니다. 예쓰 특유의 아름다운 합창과 죤 앤더슨의 맑으면서도 둔탁한 마술적 음성, 스티브 하우의 스페이스 락 風 기타 연주, 빌 브루포드의 복잡한 리듬 만들기의 진수가 들어있는 명반입니다. 70년대 초의 일반적 팝음악을 생각해 보면, 동시대에 이런 곡을 만들고 연주한 예쓰 멤버들이 인간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 Fragile
    일반적으로 예쓰 최고의 명반으로 꼽히는 앨범입니다. 흡사 딥퍼플의 "Machine Head" 처럼 최고의 라인업일 때 만들어진 앨범으로 평가되는 음반입니다. "The Yes Album"의 라인업에서 키보디스트만 Tony Kaye에서 Rick Wakeman으로 바뀐 음반입니다. 릭 웨이크먼은 "Roundabout"의 클래식 풍 건반 솔로를 통해 팬들의 기대를 능가하는 연주를 들려줬었구요.
  • Close to the edge
    딱 3곡 들어있는 음반, 하지만 세 곡 다 명곡 중 명곡입니다. 예쓰 특유의 포크적 분위기와 현란한 연주, 존 앤더슨의 청아하고 중성적인 음색이 잘 어울리는 명반입니다. "And you and I"의 포크적 감성과 "Siberian Khatru"의 진보적 색채를 느껴보세요.

예쓰 역시 초기작(Time and a word)과 중기(The Yes album - Close to the edge), 후기의 음악적 색깔이 조금 다릅니다. 가장 예쓰다운 음악은 중기 음반입니다. 초기 앨범은 예쓰 특유의 컬러가 아직 덜 확립된 상태였고, 후기는 씬써싸이져 싸운드에 지나치게 의존한 시대와 타협한 음반들이 많습니다. 처음 예쓰를 접하는 분은 "Classics"라는 편집 음반부터 시작하는 것도 괜챦습니다. 그 앨범은 예쓰 초중기의 대표작들을 두루 망라하고 있어서 단 한 장으로 예쓰의 대표작들을 즐길 수 있습니다.




예쓰였습니다.


3. ELP [ Emerson , Lake and Palmer ]

ELP또 하나의 명인들의 모임. "해먼드 올갠의 지미 핸드릭스"라고 불리우던 키쓰 이머슨(Keith Emerson)의 피아노 및 씬써사이저, 킹 크림즌의 오리지널 멤버였던 그렉 레이크(Greg Lake)의 베이스와 보컬, 그리고 클래식 팀파니 교육을 받기도 했던 칼 파머(Carl Palmer)의 드럼 및 퍼카션으로 이뤄진 밴드입니다.
이 세 사람은 ELP를 결성하기 전 각자가 영국 락 뮤직씬에서 매우 성공한 팀 멤버들이었습니다. ELP는 출범할 때부터 멤버 모두가 지명도 높은 뮤지션으로 이뤄진 수퍼 그룹이었습니다.

ELP(Emerson, Lake and Palmer)는 킹크림즌의 보컬과 베이스를 맡고 있던 Greg Lake와, 영국에서 여러 곡을 히트시킨 밴드 "The Nice"의 건반주자 키쓰 이머슨이 같이 공연을 하다 만나면서 출발합니다. 당시 킹 크림즌이 오래가지 못할 것을 느끼고 있던 그렉 레이크와 나이스를 확장 하고자 했던 키쓰 이머슨이 얘기를 나누다가 우리 함께 밴드를 만들어 보자고 의기투합해서 시작했다 합니다. ELP의 시작에는 재미있는 얘기가 있습니다. (이 부분은 ELP 공식 싸이트를 참조했습니다.)

Keith EmersonELP는 하마트면 "HELP"가 될 뻔 했다 합니다. "H"는 누구였을까요. "H"는 지미 핸드릭스(Jimi Hendrix)였습니다. 그렉 레이크와 키쓰 이머슨이 새로운 팀을 만들기 위해 드러머를 물색하다가 당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던 지미 핸드릭스 & 익스피어리언스의 밋치 미첼을 눈여겨 보게 됩니다. (심지어 Cream의 진져 베이커까지 고려했다 합니다. 그렉 레이크와 키쓰 이머슨의 지명도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밋치 미첼과 함께 팀을 만들까 하고 생각하던 이 두 사람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지미 핸드릭스도 같이 하면 어떨까 생각을 하게 되었고 실제로 추진이 되었다 합니다. "H"는 "Hendrix"의 첫 글자였습니다. 이후 드러머를 칼 파머로 결정한 뒤에도 지미 핸드릭스와의 이야기는 계속 진행되었구요.

"그렉 레이크 + 키쓰 이머슨 + 지미 핸드릭스 + 칼 파머"

만약 실현되었다면 역사상 최강의 수퍼 그룹이 되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핸드릭스의 천재적 실험성을 생각해 보면, 이 팀이 존재했다면 락 음악의 지형이 지금과는 많이 달라졌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불행히도 지미 핸드릭스가 약물 과다로 인한 질식사로 요절함에 따라 이 역사적 프로젝트는 좌초합니다. 드러머는 어토믹 루스터라는 밴드를 거친 정상급 연주자 칼 파머로 확정되었구요. (수 많은 드러머 후보들을 오디션하고, 만나 본 끝에 결정된 것이라고 합니다. 그렉 레이크와 키쓰 에머슨이 함께 연주해보자 마자 서로 'magic'을 느꼈다고 하니 과연 칼 파머의 실력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가죠? ^^)

Carl Palmer이렇게 출범한 ELP는 키쓰 이머슨이 인터뷰에서 밝힌 것처럼, "클래식 음악을 락이라는 컨텍스트내에서 해석"한 전무후무한 세련된 음반들을 쏟아 내며 영미, 유럽 전반에 걸쳐 선풍적 인기를 모읍니다. ELP는 데뷔앨범부터 폭발적인 주목을 받았었고 (멤버 한 명 한 명이 일급 뮤지션이었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였죠), 두 번째 앨범부터는 영국 챠트 수위권, 미국 빌보드 챠트 10위권에 오르는 상업적 성공을 연달어 거둡니다. 이것은 어떤 면에서 아주 신기한 일입니다. ELP의 두번째 앨범 "Tarkus"나 네번째 앨범 "Trilogy"를 들어보면 이런 '이상한' 음악이 어떻게 대중적인 빌보드 챠트의 탑 텐까지 갈 수 있었을까라는 의문이 듭니다. ELP 음악은 '프로그래시브'였습니다. 킹 크림즌의 난해했던 데뷔 앨범도 비틀즈의 'Abbey Road'를 영국 챠트 수위에서 끌어 내리고 넘버 원을 기록했었지만 그건 한 번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ELP는 두 번째 앨범부터 계속해서 챠트 상위권에 올라갑니다. 무척 고풍스럽고 때로는 듣기 까다로운 음악이고, 항상 앨범 전체로 승부했던 프록락 밴드의 앨범이 연달아 상업 챠트 수위권에 들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당시 팬들의 수준이 높았다고 생각해야 할까요? ELP 음악이 상업적인 매력도 함께 갖고 있었다고 해야 할까요? 재미있는 일입니다.

ELP는 멤버 구성에서 보신대로 기타리스트가 없습니다. 베이씨스트 그렉 레이크가 필요한 경우 기타 연주를 하곤 하지만 그런 곡은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ELP 곡은 다소 건조하게 들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바로 그 점이 ELP만의 독특한 색깔을 만들어 냅니다. 특히 여러 클래식 작품들을 재해석하며 오케스트라와 함께 라이브 공연을 하던 ELP의 음악은, 기타가 빠진 대리석 같은 싸운드가 음악적 지향점에 더 가까왔을 수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곡을 몇 개 소개합니다.

  • Lucky man
    데뷔 앨범에 담겨있던 어쿠스틱 기타가 아름다운 작품입니다. 이 곡 때문에 ELP가 상업적 주목을 받습니다. 싸이먼 & 가펑클을 좋아한다는 그렉 레이크의 취향이 묻어난 다분히 포크적이고 아름다운 곡입니다만, 곡 후반부에 갑자기 등장하는 기묘한 키쓰 이머슨의 신디싸이져 연주는 평범한 포크락을 일순간에 다른 차원으로 바꾸어 버립니다. 진보적인 색채, 실험성, 칼 파머의 정교한 드럼은 이 곡에도 예외가 아닙니다.
  • Tarkus
    20여분에 이르는 대곡입니다. 현대적 의미의 클래식이라고 해야 할 지, 락이라고 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 The endless enigma (part I,II)
    "Trilogy" 앨범에 담겨 있던 곡입니다. 이 앨범에서는 "From the beginning" 같은 팝적인 곡이 엄청난 인기를 끌었습니다만.

앨범으로는,

  • Trilogy
    현대 클래식 작곡가 아론 코플랜드의 작품이 재해석되어 화제를 모았던 앨범입니다.(Hoedown) 현란한 키쓰 이머슨의 무그 신써싸이져 연주를 들어볼 수 있는 곡입니다. 키쓰 이머쓴의 그랜드 피아노 연주도 좋습니다. 그는 무대 위에서 난폭한 퍼포먼스를 보인 것으로도 화제를 모았습니다.
  • Tarkus
    대곡 "Tarkus"라는 작품이 들어있던 명반입니다. 칼 파머의 현란한 스틱웍과 키쓰 이머슨이 사제로 제작했다는 무그 신써싸이져가 어우러진 ELP 음악의 정수입니다.
  • Pictures at an exhibition
    무쏘르그스키의 동명 타이틀 클래식 작품을 ELP식으로 재해석한 라이브 앨범입니다.


ELP는 활동 중반 자신들이 원하는 음악을 보다 자유롭게 하기 위해 레코드 레이블을 만듭니다. 이름은 "Manticore"입니다. 이 레이블에 소속된 뮤지션 중에는 이탈리아 프록락 밴드의 선두주자 "PFM"이 있습니다. PFM이 세계시장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에 ELP의 역할도 컸습니다.

ELP의 곡은 클래식적인 요소가 짙기 때문에 가급적 앨범 전체를 들어보는 것이 좋습니다.





4. Pink Floyd

Pink Floyd영국 락을 얘기할 때 거의 전설처럼 언급되는 팀이 몇 팀 있습니다. 레드 제플린, 딥퍼플, 블랙 쌔버쓰 등의 하드락 밴드가 우선 떠오릅니다. 그리고 에릭 클랩튼의 기타와 진져 베이커의 드럼을 들어볼 수 있었던 크림도 생각납니다. 그런 수준에 있는 팀이 핑크 플로이드입니다. 프록락 차원을 너머, 영국 최고의 락그룹 중 하나로 꼽히는 팀입니다.

핑크 플로이드의 역사는 1964년으로 거슬러 올라 갑니다. 캠브리지 고등학교 동창생들인 씨드 배릿(Syd Barrett), 데이빗 길모어(David Gilmore), 로져 워터스(Roger Waters) 등이 어울려서 이 전설적인 밴드가 결성되는데, 곡과 가사를 쓰고 기타 연주와 리드 보컬까지 도맡아 하며 핵심적인 역할을 하던 씨드 배릿은 약물 과다 복용으로 여러가지 문제를 일으키다가 중도하차,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핑크 플로이드의 모습은 세번째 앨범 "Ummagumma"에서 시작됩니다.

첫 출발은 비틀즈의 "Sgt.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風의 싸이키델릭 락이었습니다. 여러가지 싸운드 이펙트를 과감하게 사용하며 몽롱한 분위기를 연출했던 데뷔앨범 "The Piper At The Gates Of Dawn"에서 "Interstella overdrive"라는 곡이 히트하면서 밴드는 전 영국에 이름을 알립니다. "Interstella overdrive"는 우주적 느낌을 주는 스페이스 락(space rock)적인 곡으로, 씨드 배릿의 과감한 실험 정신이 최고조로 드러난 곡입니다. 씨드 배릿의 영향력은 그가 팀을 나간 뒤로도 적지 않아서, 이후 몇 장의 앨범을 더 내놓을 때까지도 사람들은 핑크 플로이드에서 씨드 배릿의 그림자를 느꼈습니다.

씨드 배릿이 나간 다음 핑크 플로이드는 십여 년 이상 멤버 변동 없이 락 역사에 길이 남을 음반들을 창조합니다. 핑크 플로이드 음악은 크게 세 시기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시기는 씨드 배릿이 이끌던 1,2집까지. 둘째 시기는 멤버들 모두 최고 수준의 기량과 감각을 보여주었던 "Animals" 전까지의 시기. 마지막은 로져 워터스의 자의식이 과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던 "Animals" 이후 시기입니다.

세 시기의 음반은 각기 컬러가 상당히 다르기 때문에 어떤 앨범을 듣느냐에 따라 핑크 플로이드에 대한 느낌이 많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저는 중기, 즉, 1970년도부터 1975년까지의 시기가 가장 핑크 플로이드다운 핑크 플로이드였다고 생각하고 있고, 이 시기의 음반들을 우선적으로 들어볼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핑크 플로이드 음악은 '싸이키델릭 블루스'에서 출발했던 밴드답게 약물에 취한 듯한 몽롱함, 그리고 과감한 싸운드 이펙트 사용(새소리, 사람들 말소리, 발자국소리,..)에서 비롯되는 세련된 실험성이 돋보입니다. 핑크 플로이드를 프록락의 범주에 넣는 것은 말씀드린 바대로 강한 실험성 때문이지만, 연주 그 자체는 사실 지극히 영국 락적이며 어떤 면에서는 전통적이기까지 합니다. 핑크 플로이드는 예쓰나 제네시스 그리고 ELP처럼 연주상의 진보적인 면이 있었다기 보다는 밴드 이미지, 가사, 레코딩 측면에서 프록락적인 컬러를 더욱 강하게 드러내는 것 같습니다.

대표곡으로는,

  • Time
    락 음악 역사상 최고의 명반 중 하나로 꼽히는 "The dark side of the moon"에 실려 있는 곡입니다. 곡 도입부에 울려퍼지는 여러 대의 자명종 시계 소리 때문에 깜짝 놀라게 되 곡으로 시간의 몽롱한 흐름을 묘사하며 나른한 느낌을 줍니다.
  • Brain damage
    역시 "Dark side of the moon" 앨범에 있는 곡입니다. 설뜬 듯 들리는 로져 워터스의 음성에 섬짓한 가사와 세련된 연주에 실린 미묘한 광기는 프록락의 특징을 잘 드러내줍니다.
  • Fearless
    중기 음반 "Meddle"의 세번째 트랙입니다.
  • Wish you were here
    평이한 곡이지만, 친숙한 선율과 구성으로 많은 인기를 모은 곡입니다. 이 곡은 씨드 배릿에 대한 그리움을 묘사한 곡입니다.
  • Mother
    "The wall" 앨범에 들어있는 곡입니다. 로져워터스의 독백과 같은 곡입니다.
    "엄마.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나요?"라고 되묻는 주인공 핑크의 강박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몸부림이 아름다운 어쿠스틱 기타 리듬에 실려 있는 곡입니다. 이렇게 쉬운 코드에서 이처럼 나른하고 염세적 분위기가 강한 멜로디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 Comfortably numb
    역시 "The wall" 앨범에 들어있는 곡입니다. 후기 핑크 플로이드 싸운드가 잘 드러나는 곡으로 AFKN 라디오에 자주 나오는 곡이기도 합니다. 잔잔하고 친숙한 멜로디에 단절된 현대인의 삶을 그리는 가사가 잘 어울립니다. 데이빗 길모어의 블루지한 기타 솔로가 아주 좋습니다.
  • Welcome to the machine
    지나치게 난해하지는 않으면서 실험성이 묻어난 곡입니다. 암울한 SF 영화를 보는듯한 느낌을 주는 곡입니다.

"The dark side of the moon" 앨범은 반드시 구입하시기 바랍니다. 이 앨범은 빌보드 앨범 챠트에 10년(10달이 아니고) 넘게 올랐던 음반입니다. 평론가나 팬들이나 주저하지 않고 핑크 플로이드 최고의 명반으로 꼽는 이 앨범은 밴드의 창조적 에너지가 극대값에 다달았던 시기에 내놓았던, 락 음악 전체를 통뜰어 가장 뛰어난 음반 중 하나입니다. 이 앨범의 레코딩 엔지니어가 바로 그 "Alan Parsons"였구요, 알란 파슨스가 소시적, 비틀즈의 "Sgt.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앨범 레코딩을 직접 보았을 때 받았던 충격을 자기 자신이 직접 핑크 플로이드 음반을 녹음하면서 재현해 낸 앨범입니다.

그 앨범 외에 몇 장을 더 추천해 드리자면,

  • Meddle
    이 앨범 전에 나왔던 "Ummagumma"같은 앨범은 너무 난해해서 거의 죤 케이쥐식의 전위음악 수준입니다. 그런 실험정신이 "Meddle" 앨범에 와서는 상당히 더 정리된 형태로 발산이 되어서 이 앨범은 어렵지 않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 Wish you were here
    이 앨범 역시 중기 음반입니다. 씨드 배릿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한 앨범으로, 이 앨범 레코딩 당시 씨드 배릿이 스투디오에 (폐인이 되어서?) 나타났다는 전설도 있습니다. 곡들은 블루스입니다. 데이빗 길모어의 절제되면서도 창조적인 펜타토닉 스케일 활용을 들어볼 수 있습니다. Shine on your crazy diamond는 파트 9까지 나눠진 대곡으로 핑크 플로이드의 대표작 중의 하나로 꼽히며 사랑받는 곡입니다. "Welcome to the machine"는 여전히 번뜩번뜩한 실험정신의 칼날을 드러내기도 하구요. 핑크 플로이드 팬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음반 중 하나입니다.
  • The wall
    "Animals" 앨범부터 두드러지기 시작한 베이씨스트 겸 보컬리스트 로져 워터스의 개성이 가장 적절하게 표출된 앨범입니다. 이 앨범은 뒤이어 영화화되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을 기계에 넣어서 '소세지'로 뽑아낸 충격적 장면이 담겨있던 영화. "We don't need no education" 이라는 도발적 가사가 담긴 "Another brick in the wall part II"는 빌보드 싱글 챠트 정상을 차지하기도 했었습니다.
meddle dark side of the moon wish you were here

이외에도 "The final cut" 앨범도 괜챦습니다만은 "Animals" 이후의 음반들은 핑크 플로이드 특유의 색깔이 탈색된, 사실상 로져 워터스 솔로앨법입니다. 실제로 기타리스트 데이빗 길모어는 앨범에 자기 이름을 빼달라고까지 했습니다. 핑크 플로이드 해체이후 나온 로져 워터스 솔로 앨범은 이전의 핑크 플로이드 음악보다 연주상으로는 보다 더 평이해지면서, 메세지는 더욱 더 현실 참여적으로 바뀐 것이었습니다.

핑크 플로이드에 관한 더 자세한 얘기는 로져워터스 서울 컨서트 관람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이상으로 프록락界의 대표적인 밴드 소개를 마칠까 합니다. 꼭 넣었어야 할 밴드인데 빠뜨린 팀이 킹 크림즌입니다. 나중에 다른 글에서 소개드릴 기회가 있을 것 같습니다.

모쪼록 이 경이로운 음악들이 많은 분들께 즐거움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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